먼저 제 소개부터
하겠습니다. 199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교로 건너가 신경과학 박사과정을 마친
하병근이라는 사람입니다. '신비로운 비타민-C'라는 책을 쓴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글은 지난 토요일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그리고 KBS 방송의 비타민-C 유해론 보도는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이었다는 사실을 여러분들과 한국 언론에
알려드리기 위해 쓰고 있는 글입니다.
세 곳 모두 논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고 보도한 것이 아닙니다. 미국의 AP 통신과 로이터 통신의 기사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보도한 것으로 논문의 내용과 비타민-C의 참모습은 보도된 기사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주류 언론의
섣부른 한마디가 의학을 얼마나 허무하게 만들어 버릴 수 있는지를 그대로 노출시킨 EH한번의 좋은 예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조선일보의 "비타민-C가 암 유발할 수도", 중앙일보의 "비타민-C 과잉 복용땐 유전자
손상시킬 수도", KBS 뉴스의 "비타민-C 보충제, DNA 손상 가능" 등 이 기사
제목들만 본다면 비타민-C 고용량 복용은 이제 사라져야 할 운명인 것 같이 보입니다.
하지만 세 곳 다 논문을 제대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이 보도들이 얼마나 왜곡된 것인지 지적해
보겠습니다. 논문은 2001년 6월 15일 발간될 저널 '사이언스' 292호 2083~2086 페이지에 실려 있습니다.
"비타민-C가 암 유발할 수도",
"노화나 암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비타민-C가 오히려 인체의 DNA를 파괴,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조선일보
기사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런 보고서는 나온 적이 없습니다. 논문 어디에도 비타민-C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적혀있지 않습니다. 논문 어디에도 비타민-C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적혀있지 않습니다. 책임 연구자인 이안 블레어
(Ian A. Alair)는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Absolutely for God's sake don't say
vitamin-C causes cancer."(절대 비타민-C가 암을 일으킨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런데 보도에서 이 부분은 빠뜨린 채 "비타민-C가 암 유발할
수도"라는 카더라 통신이 사람들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왜 책임 연구자가 서둘러 이런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려드리기 위해 이 논문이 서 있는 패러다임을 짚어 보겠습니다.
1. 먼저 이 논문은 생물학 논문이 아닙니다. 의학 논문은 더 더욱 아닙니다.
단지 시험관에 비타민-C와 산화지방(Lipid hydroperoxide)을 넣고 반응을 시켜 얻은 화학 반응 결과를
발표한 논문일 뿐입니다. 사람을 이용한 실험도, 동물의 생체를 이용한 실험도, 세포를 이용한 실험도, DNA를
이용한 실험도 아닙니다. 생체나 혈액 속에 존재하는 물질들을 모두 배제한 채 행해진 시험관 속의 실험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시험관에서 진행시킨 화학 반응은 인체 내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입니다. 이들은 시험관 안에 가상 현실을
만들고 거기에서 일어난 일을 토대로 과학자라면 해서는 안 될 논리적 비약을 감행하며 비타민-C를 고용량으로 복용하면
DNA를 손상시킬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2. 인체 내에서 자유기(free radical
: 유리기)와 유해산소(ROS, reactive oxygen species : 활성산소)가 생기면 이를 비타민-C와
같은 항산화제들이 처리해 냅니다. 항산화제가 고갈되어 유해 산소나 자유기가 처리되지 않으면 세포막과 세포 내의
지방이 이 유해산소나 자유기들의 공격을 받아 산화지방(Lipid hydroperoxide)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 논문은 엉뚱하게도 비타민-C가 충분히 존재하면 생겨나지 않을 물질을 과량으로 미리 만들어 시험관 속에
넣고 여기에 비타민-C를 집어 넣어 버렸습니다. 유해산소와 자유기를 폭발물이라고 하면 비타민-C는 폭발물 처리반입니다.
비타민-C가 충분히 존재하면 폭발물은 터지기 전에 제거됩니다.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까지 보도된 이 논문은 폭발물을
터뜨려 지방을 무더기로 산화시켜 놓은 후에 폭발물 처리반 비타민-C를 넣은 것입니다. 이런 패러다임은 가상 현실의
공간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3. 이들이 시행한 시험관 속 실험은 생체
내의 환경을 완전히 무시하고 진행된 실험입니다. 생체 내에는 수많은 효소들과 항산화제들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토요일
오후의 복잡한 명동 거리를 예로 들어보지요.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오가며 명동을 가득 메웁니다. 이 사람들 중에는
산화지방을 무해한 물질로 변환시키는 효소도 있고 산화지방이 생겨나지 못하게 하는 항산화제도 있습니다. 물론 산화지방도
거리를 활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산화지방이 거리에 다니면 순식간에 변환 효소에 의해 처리됩니다. 비타민-C와
만날 시간도 없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실험은 명동의 모든 사람들을 다 쫓아버리고 산화지방과 비타민-C만
남기고 진행된 것입니다. '사이언스'에 실을 영화 한편 찍기 위해 거리의 행인과 점포를 지키는 상인들을 모두 몰아내고
산화지방과 비타민-C를 등장시켜 촬영을 했다는 것입니다.
4. 이들이 사용한 산화지방의 농도와 비타민-C와
함께 반응시킨 시간 역시 작위적인 요소가 다분합니다. 이들은 논문에서 정상적인 혈액 내에 존재하는 비타민-C의
농도와 세포내에 존재하는 비타민-C의 농도를 제시하면서 자신들이 실험에 사용한 비타민-C 농도가 이에 상응한다며
자신들의 연구결과를 합리화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자신들이 실험에 사용한 산화지방의 농도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습니다. 이들은 산화지방을 400 마이크로몰 농도(uM)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혈액 속에 존재하는 산화지방의 양은 많아야 40 나노 몰 농도(nM)를 넘지 않습니다. 이들은 정상적인 인체 내의
농도보다 넘지 않습니다. 이들은 정상적인 인체 내의 농도보다 10,000배나 많은 양의 산화지방을 시험관 속으로
쏟아 부었습니다. 또한 이들은 비타민-C와 산화지방을 섭씨 37도의 시험관 속에 두 시간까지나 두었습니다. 자유기에
의한 산화 반응들은 초 단위도 길 정도로 찰나의 순간에 빠르게 반응이 마무리됩니다. 또한 인체 내에서처럼 산화지방을
변환시키는 효소가 있다면 몇 초 내에 산화지방은 무해한 물질로 처리됩니다. 산화지방이 아무런 제약 없이 비타민-C와
두 시간까지 만나고 있다는 건 인체 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또한 비타민-C를 공기 중에서 섭씨 37도의
시험관 용액 속에 두 시간씩이나 두면 산화지방이 있건 없건 비타민-C 역시 변합니다.
5. 그렇다면 어떻게 이렇게 작위적인 실험이
진행될 수 있었을까요? 그 답은 블레어의 이야기로부터 찾아낼 수 있습니다. 블레어는 비타민-C가 산화지방을 DNA
손상 물질로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는 예감이나 육감(hunch)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실험을 통해 객관적
관찰을 해 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예감을 현실로 옮기려는 몸부림이 이런 엉뚱한 패러다임으로 치달았고 그 결과는
지금 전 세계를 혼돈에 빠뜨리고 말았습니다. 산화지방의 농도가 400 마이크로 몰 농도까지 솟아 있는 것과 비타민-C의
농도는 생리적 농도에 맞게 한답시며 100 마이크로 몰 농도(uM)에서 2밀리 몰 농도 (mM)에 이르기까지 8가지의
각기 다른 농도로 실험을 하면서 산화지방은 생리적 농도의 만 배에 가까운 농도 하나로 고정했다는 것은 이들이 어떤
선입관을 가지고 실험을 진행시켰는지 훤히 보이는 부분입니다. 서글픈 현대 과학의 현주소입니다.
사람을 알지 못하고 시스템을 알지 못하고
세포 아래로 내려가 버린 과학이 이제 이런 결과들을 뿜어내고 있고 그 속내를 알 길이 없는 언론은 껍데기만 보고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비타민-C죽이기가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이런 종류의 연구 보고는 비정상적인 패러다임을 발판으로 지속될 것입니다.
사람은 세포도 아니고 시험관 속의 시약도 아닙니다. 사람에 대한 객관적 관찰을 토댈 세포로 내려가야 하는데, 이
시대는 지금 세포에 대한 주관적 관찰을 토대로 사람으로 올라오려 합니다. 이를 막아서기 위해서 이제 의학은 사람을
보아야 합니다. 비타민-C는 사람을 치유하는 자연물입니다.
끝으로, 한국의 언론에 부탁드립니다. 성급한 보도를 자제해 주시고 논문을 살핀 후에 미국 언론의 기사를 인용해
주십시오. AP통신의 폴 레서(Paul Recer)라는 과학 기자가 6월 14일 미국 동부 시간 오후 2시 1분에
쓴 기사의 제목은 이렇습니다.
"Study: Vitamin-C
Pills May Damage DNA"(비타민-C 보충제가 DNA를 손상시킬수도 있다는 연구)
제목으로 내건 것에 비해 내용은 한국 언론에 보도된 내용보다 훨씬 강도가
약합니다. 그리고 4시간 후, 미국 동부 시간으로 오후 6시 6분, 폴 레서는 내용을 수정한 후 제목을 다시 달았습니다.
"Lab Study Finds 비타민-C Dangers"(실험실의
연구가 비타민-C의 위험성을 찾다)
시험관 속의진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는지 레서는 톤을 낮추고 비타민-C가 DNA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표현을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언론에 보도된 사실은 레서의 첫 번째 기사들보다 훨씬 더 강한
톤입니다.
로이터의 윌 던햄(Will Dunham)은 "
비타민-C Found to Promote Cancer-Causing Agents" (비타민-C가 암을
유발하는 물질의 생성을 항진시켰다) 라고 제목을 적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기사 내용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비타민-C가 암을 일으킨다고는 절대 말하지 말라는 블레어의 인터뷰
내용도 함께 싣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언론은 이 이야기를 빠뜨린 채 비타민-C가 암을 유발할 수 있다고 적었습니다.
한국에 잘못된 비타민-C 바람이 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언론의 책임이 컸습니다. 비타민-C는
사이비 의학이 아닙니다. 이론적 토대가 없이 먹고 나았으니 먹으라는 논리도 아닙니다. 비타민-C가 왜 이런 공격들을
받으면서도 서구에서 수십 년간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지를 한번 돌아보아 주십시오. 그리고 토론의 장을 열어 주십시오.
참된 비판과 거기에 대한 토론과 이에 이어지는 공감과 이해 속에 의학은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현대 의학의 빈
곳은 이렇게 메워가야 하리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제 이야기를 한번쯤 돌아보아 주시고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시면
'사이언스'의 논문에 대한 이러한 비판들도 앞으로의 보도에 참고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6월 17일 저녁 오하이오 콜럼버스에서 하병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