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좋은 부모님을 만나서 일찍이 하나님을 영접한 사람입니다. 비록 시골에서 자랐지만 부모님께서는 일찍이 공부를 시키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제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서 의대생들에게 인체의 구조에 대해서 해부학을 가르칠 수 있는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저는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하나님께서 창세기를 통해서 인간을 지으신 여러 가지 모습들과 학문적으로 너무나 귀하게 잘 맞는다는 사실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저는 하나님께서 지어놓으신 생명에 대한 깨우침을 얻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신앙 가운데서 생명에 대한 깨우침이 많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40여년간 해오면서도 그동안 저는 진정한 하나님이 지으신 생명에 대한 섭리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면서 얼마나 창세기를 많이 읽었는지... 그럼에도 창세기 말씀은 너무도 재미없고, 교회에서 성경을 통독하라고 하면 의무적으로 읽고 지나쳐버리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1990년 2월이었을 것입니다. 겨울 날씨답게 쌀쌀했는데 저는 학교에 발령받기 전에 미리 가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바로 제 옆의 교실에서 근무하는 법의학선생님과 함께 죽은 지 얼마 안 된 여인을 부검하게 되었습니다. 그 부검하는 자리에서 저는 묘하게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부검대에 한 여인을 눕혀 놓고 법의학 선생님과 함께 부검을 하려고 흰 가운으로 갈아입고서 잘 드는 칼을 준비하는데 그날따라 이상했습니다. 부검대 위에 눕혀 있는 여인을 바라보는 순간 '살아 있는 나와 이 여인의 차이가 무엇일까?' 하는 너무나 원시적인 질문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질문이 더더욱 현실화된 것은 그 여인의 피부를 제가 만져봤을 때 제 피부와 전혀 다름이 없음을 느꼈을 때였습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생각은 과연 내가 이 여인의 가슴을 절개해야 하는데 이 여인이 가만히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벌떡 일어날 것 같은 착각이 저로 하여금 부검을 시작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용기를 가지고 그 여인의 가슴을 칼로 날카롭게 절개해서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체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 아주 망연하게 앞을 바라보았더니 마치 창세기 2:7 말씀이 자막처럼 제 앞에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저는 이 말씀을 수없이 읽었지만 은혜를 받지 못한 성경구절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코에다 생기를 불어넣었더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는, 단순히 문자 그대로만을 믿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 말씀이 진실일까?'하는 데는 회의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하나님은 교만한 저에게 찾아 오셨던 것입니다. "이놈아, 네가 잘 났으면 얼마나 잘 났느냐? 네가 서울대 교수라고? 그것이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이냐?" 하고 꾸짖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다시 자막처럼 보여주시는데 저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날 여인을 부검하면서 왜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셨을까에 대해서 금방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창세기 2:7에 나오는 생기, 생명의 근원이 되는 생기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부검대 위에 누워있는 이 여인이 날카로운 칼로 가슴을 절개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생기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창세기 1, 2장에 나오는 바로 그 아담과 하와를 지으시고 즉, 잠자는 아담의 가슴으로부터 갈비뼈를 취하셔서 흙으로 하와를 자기 형상을 따라서 아름답게 지어 놓으시고 아직 그 코에다 생기를 불어넣지 않은 그 여인을 저는 그날 부검대에서 만났던 것입니다. 바로 아직 그 코에다 생기를 불어넣지 않았기 때문에 그 여인은 날카로운 칼로 가슴을 절개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여인은 하나님이 흙으로 빚어 놓은 하와와 전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때 분명하게 이 말씀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학생들에게 생명에 대해서 아주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명은 꼭 심장이 펄떡펄떡 뛰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너희들과 늘 함께하는 그것이 곧 생명이다. 너희들이 내 말을 알아듣는 그 힘, 한 줄기 바람으로 인해서 한 여름에도 더위를 잊으며 느끼는 시원함, 아플 때 아프다고 느낄 수 있는 그 힘이 바로 생명인 것이다'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강의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날 이후로 성경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창세기를 이렇게 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창세기 1장부터 다시 새롭게 보았습니다. 예전에 통독을 목적으로 그냥 읽을 때와는 다르게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에 담겨진 의미들이 제 가슴속에 와 닿기 시작했습니다.

창세기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이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이 죄를 지으므로 징계를 하시는데, 그 징계 가운데 하나님이 생명을 운행하시는 원리와 계획을 깨닫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창조역사로 빚어놓은 아담과 하와를 그렇게 허망하게 에덴동산에서 죽게 만드셨다면, 하나님의 인간 창조 역사는 실패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내리신 징계는 단순한 징계가 아니었습니다. 그 징계는 아담과 하와가 죽기 전에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하나의 틀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가 죽기 전에 새로운 생명을 만들고, 또 그 후손이 죽기 전에 새로운 생명을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생명이 이어지도록 하셨습니다. 그것은 곧 인간의 생명이 운행되는 원리를 보여주는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시대의 계획입니다.

현재 지구상의 인구가 60억쯤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들 가운데 나와 똑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한 사람도 없습니다. 쌍둥이조차도 틀립니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고 나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과정 동안에 이 세상에 몇 명이나 왔다 갔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100억이 넘을 것입니다. 100억이라는 숫자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과연 인간이 어머니 뱃속으로부터 나오자마자 수를 센다면 죽을 때까지 얼마나 셀 수 있습니까? 10억을 못 셉니다. 24시간 동안 하나, 둘, 셋, 넷 하고 평생을 세어도 10억을 못 센다고 하니, 이 100억이라는 숫자가 얼마나 큰 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에게 허락하신 단지 23쌍의 유전자 2조(組)를 통해서 이렇게 많은 생명을 각기 다르게 만들 수 있음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정녕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셨을 뿐 아니라 그 생명 하나 하나가 귀중하도록 다르게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과연 그 생명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깨닫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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