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 문제가 논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심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즉, 심장은 이를 지배하는 신경이 손상되어도 자기 스스로 계속해서 박동을 할 수 있는 자율성이 있는 유일한 장기다. 따라서 심장박동조절중추인 숨골이 망가져도 심장은 자기 혼자 스스로 박동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때 같은 숨골 속에 있는 호흡조절중추도 같이 망가지기 때문에 호흡이 정지되고 곧 이어서 산소부족으로 인해 자율적으로 박동을 하던 심장도 영원히 멈춰 자연스럽게 사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두 번째 이유에 해당하겠지만 의술의 발달로 인공호흡기가 등장하여 심장의 자율성이 오랜 기간 인위적으로 보장이 되는 상황이 흔히 병원에서 연출되고 있다. 의술이 발달되지 않았던 과거에는 자연스럽게 뇌사는 심장사로 이어졌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다가 의술의 발달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는 말이다.
게다가 희미하게나마 심장이 뛰는 환자의 장기야말로 장기이식의 성공률을 압도적으로 상승시킨다는 사실이 장기이식이 보편화되면서 알려지게 되어 더욱 뇌사의 법제화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현재 뇌사를 법제화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준비해놓은 뇌사판정의 기준을 보면 너무 경직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다. 뇌사의 법제화를 추진하는 그룹은 짐작되는 대로 장기이식에 관심이 많거나 이미 그 분야에 종사하는 의료진들이다.
이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뇌사판정의 기준은 신중하고 학문적으로 완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반대 혹은 우려가 끊이지 않는 것은 죽음을 판정하는 새로운 기준이기 때문인 것이다.
삶과 죽음을 나누는 기준을 정함에 있어서야 그 신중함이나 완벽함이 아무리 철저한들 지나칠 수가 없다.

그러나 완벽하게 준비된 뇌사 판정의 기준 그 자체를 평가해볼 때 신앙적으로 하등의 문제가 없을 것으로 평가된다. 즉 뇌사의 개념 자체가 의술의 발달이라는 새로운 국면에서 자연스럽게 제기된 신개념이기 때문에 순수한 뇌사 인정 자체만으로는 신앙적으로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어차피 심장사도 국민적 합의 하에 이루어진 죽음에 대한 하나의 기준일 뿐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생명은 심장만 뛰는 거의 죽은 사람과 다름없는 그런 존재가 아니고 만물을 다스릴 수 있는 뇌의 활동을 가진 존재라는 점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 뇌사의 법제화가 주는 실제적인 사랑의 실천적 측면이 강조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뇌사자로부터 제공된 장기를 이식받고 새 삶을 얻는 경우를 예로 들 것도 없이 장기이식을 중심으로 일어나는 사랑의 실천은 기독교에서 지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사랑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론적으로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뇌사의 인정과 더불어 발생할 수 있는 많은 부작용들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굳이 이 자리를 빌려 다시 거론하지 않더라도 장기이식을 전제로 한 뇌사의 인정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 사탄의 무리들을 발동시켜 죄가 관영하는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데 큰몫을 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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