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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서 어떤 사람인들 자유로울 수가 있을까? 누구인들 두렵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 주위를 돌아보면 나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든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이든 간에 하루에도 수백 명, 아니 수천 명이 이 땅을 떠나가고 있음에야 어찌 죽음이 우리 삶 가운데 우리와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삶의 현상임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지구상에 있는 그 누구도 죽음을 직접 경험해 본 사람이 없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항상 공허할 수밖에 없음에도 마치 모든 것을 아는 양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라치면 한편으로낯간지러움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죽음의 신비성 때문인지 몰라도 우리는 죽은 육신에 대해서도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생각을 하는 때가 많다. 죽은 육신을 살아 있는 육신보다도 더욱 정중하게, 더욱 소중하게 다루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장례식의 장엄함도 결국은 시신에 대한 예우이며 한편으로는 또 다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의 표시이기도 한 것이다. 이 두려움의 대상인 시신을 의학교육용으로 기증한다는 생각을 보통사람들이 쉽사리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시신에 관한 한 의식의 전환이 절실한 때라는 생각을 해 본다.

필자는 특히 의과대학에서 해부학을 교육하는 교수이기 때문에 시신기증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절감하는 사람이다. 잠시 왜 새삼스럽게 시신기증운동이 중요하게 되었는지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사실 지난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신기증운동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거의 없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즉 30여 개의 의과대학에서의 시신수요가 충분히 충족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많은 독자들이 잘 모르시는 내용이리라 생각되어 일부 언급을 하면 80년대 중반 그 이전에는 의과대학 해부학 실습을 위한 시신들이 서울시내 각 구청의 사회복지과로부터 공급이 되었었다. 소위 ‘무연고시신’이 생기면 그 시신을 적법하게 처리하는 부서가 바로 구청의 사회복지과이기 때문이다. 실제 ‘시체해부보존법’에 의하면 ‘무연고 시신이 발생하였을 때 인근 의과대학에서 요청이 있으면 그 시신을 해당대학에 교부할 수 있다’라고 명시되어 있음이 그 근거가 되는 것이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무연고시신이 서울시의 각 구내에 자리하고 있는 의과대학으로 교부되었기 때문에 의과대학에서의 해부학실습에 전혀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으로 들어서면서 전국 행정기관의 전산화 작업에 의해 무연고시신이 현격히 감소하였을 뿐 아니라 무연고시신과 관련된 어느 한 사건이후 구청 사회복지과로부터 각 의과대학으로의 시신교부는 철저하게 두절되어갔다. 독자들도 짐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무연고시신으로 판단되어 의과대학에 교부되었으나 뒤늦게 그 연고자가 나타나게 되었을 때 구청 사회복지과 직원들이 연고자들로부터 받게 되는 고충이야 독자들이 그 일을 나의 일로 생각해 보면 금방 가슴에 와 닿는 사실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의과대학에 교부하기보다는 즉시 가매장을 하거나 화장처리를 하는 것이 나중에 생길 문제에 대한 편한 조치임을 행정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금방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풍조가 전 구청의 사회복지과 직원들에게 확산되면서 발생한 무연고시신은 의과대학으로 교부되기보다는 즉시 가매장되거나 화장되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이 여파가 각 의과대학에서 현실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부터이니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의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해부학실습 교육의 부실화인 것이다. 즉 종전에는 6명의 의과대학 1 학년 학생들이 그들의 실습을 위해서 시신 한 구를 사용하였는데 90년대 초반에는 시신 한 구에 20명 이상의 의대생들이 둘러섰으니 독자들도 그 실습의 부실함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직접 해부를 볼 수 있는 기회는 사라지고 어깨 너머로 남이 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으로 실습을 대신했어야만 했으니 그 부실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독자들에게 묻노니 시체실습을 제대로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의대생이 과연 좋은 의사가 될 수 있을까?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다행스럽게도 이에 대한 -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 대책이 시신기증운동의 전개를 통해서 이루어진 일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초기에는 거의 국민들의 호응이 없었으나 1992년 8월 당시 서울의대 학장이셨던 故 이광호 교수 (구산교회 장로)가 신장암으로 별세하셔 시신을 의학연구용으로 기증하셨는데 그 내용이 우리나라 전 언론기관에 보도됨으로 시신기증운동이 전 국민적 운동으로 확산되어 명실공히 시신기증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게 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한 시신기증운동의 폭발적 증가는 소위 기독교계 대학으로 잘 알려져 있는 연세대학교 등으로 하여금 일찍 기증된 시신으로 충실한 해부학 실습 교육을 할 수 있게 하고 있음은 바람직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인으로서 시신기증운동에 대해서 살펴보자. 한 때 ‘휴거’소동으로 기독교계에서 시신기증운동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진 적이 있는데 이것은 지극히 잘못된 신앙관임을 새삼스레 지적하기를 원한다. 우리의 부활은 소위 썩어 없어질 육신의 부활이 아님을 잘 모르는 일부의 기독교인들로부터 비롯된 잘못된 현상이었던 것이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육신을 의학교육을 위해 헌신하는 것은 소위 기독교에서 말하는 총체적 사랑의 실천인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된 바와 같이 의학교육 중 해부학 실습의 중요성을 간파한 분이라면 시신기증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 사랑의 실천 운동인지를 깨달았을 것으로 짐작해 본다. 죽어 없어질 한 육신이 질병으로 죽어 가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진정한 의학교육의 자료가 될 때 성경이 말하는 ‘한 알의 밀알이 죽어야 ‘ 의 진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참고

(1) 시신기증의 의의
시신기증이란 본인의 유언이나 유가족의 뜻에 따라 아무런 조건과 어떤 보상 없이 해부학 교육과 연구를 위하여 죽은 후 몸을 내놓는 것을 말합니다.

시신기증은 정상적인 의학교육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훌륭한 의사를 만들고 밝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이바지합니다. 기증인의 훌륭한 뜻은 사회를 맑게 하고 그 뜻을 이해한 유가족들은 돌아가신 이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되며, 유가족들은 장례절차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되며, 사회적으로는 묘지를 없애 우리 산을 아름답게 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즉 시신기증은 단지 교육에 필요한 시신부족을 해결하는 데만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의사로서 필요한 마음가짐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시신기증은 학문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훌륭한 의사를 길러내는 데 밑거름이 되어 우리의 건강을 높이는 데 이바지하는 고귀한 일입니다.

(2) 시신기증의 절차.
생전에 유언하시면 의과대학에 시신기증 유언인으로 등록됩니다. 유언인이 돌아가신 후 유가족께서 관계기관으로 연락하시면 필요한 서류를 보내 드리며 시신을 의과대학으로 모셔 오는 것으로 시신기증이 이루어집니다. (연령제한은 18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 할 수 있고 나이가 많은 것에 대한 제한은 없습니다. 또한 기증을 취소하실 경우 연락하시면 기증서약은 무효가 됩니다.)

(3) 기증하기를 원하시면
등록에 필요한 서류는 아래와 같습니다.
① 본인이 서명 날인한 유언서
② 가족동의서
③ 유언인과의 가족관계를 증명하는 서류(주민등록등본 또는 호적등본)
④ 증명사진 2장: 등록증에 쓸 것 1장과 보관용 1장

(4) 문의 및 연락할 곳
서울의대 해부학교실 : 02)740-8213 / 8215
인터넷 주소: http://my.dreamwiz.com/khpark740/cadaver.html

*인터넷으로 들어가시면 시신기증에 관련된 자세한 정보를 얻으실 수 있으며 시신의 운반이나 처리, 장례절차 비용 및 장례식장 이용 등의 혜택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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