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역경의 열매(11)
 
 

 

1996년 12월 21일! 아마 이 날은 평생을 두고 잊지 못할 날이 될 것 같다. 지방에서 친구들과 토요일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하나밖에 없는 딸 ‘하나’가 교통사고로 다쳤다는 연락을 받았다. 부랴부랴 상경하여 딸이 입원하고 있다는 건국대 부속병원인 민중병원에 도착하여 상황을 알아보니 최소한 딸 하나가 죽지는 않았다는 사실이고 의식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도착하였을 즈음 컴퓨터 단층촬영을 위해 카트에 실려 옮겨지고 있었던 때인데 지금 생각해도 나는 그렇게 딸의 교통사고에 의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울부짖으며 카트를 따라가면서 딸아이를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만들어 주위 사람들로부터 강한 제지를 당했던 기억이 새롭다. 오히려 아내가 더 의연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여자들이 남자들보다 강하다는 말이 맞나 보다하는 생각을 한 그 당시의 기억이 새롭다. 정신을 차리고 자초지종 이야기를 들으니 들은 이야기와 환자인 딸아이의 상태는 전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판이했다.

이야기인 즉, 주차된 차들 앞에서 운동화를 고쳐 신으려고 허리를 굽힌 순간 딸 쪽으로 우회전하던 차가 미처 어린 딸을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순간 주차경비원의 외침을 듣고 운전자는 급정거를 하였지만 이미 그 때는 차의 앞바퀴가 딸의 가슴과 복부 경계 부위를 타고 넘어 선 때였다. 주차경비원의 ‘스톱!’ 하는 외침에 영문도 모른 채 차를 세운 운전자는 차에 내려서서야 비로소 사태의 절박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뒤에 운전자로부터 들은 이야기지만 우회전을 하는 순간 분명 그곳에 과속방지용 턱이 없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앞바퀴가 무언가를 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조금 이상했었노라는 이야기까지 듣고서야 나는 우리 딸아이가 당한 사고가 어떤 사고였는지에 대한 감을 분명하게 잡았다. 아내는 그 승용차의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에서 딸아이를 꺼낸 뒤 병원 응급실로 급하게 데려갔는데 아이가 의식이 있고 큰 외상이 보이지 않았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노라는 이야기를 하였지만 나는 그 당시 몹시 아내를 나무랐던 것으로 기억된다. 임상의사는 아니지만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한 때 임상을 하려고 인턴까지 마친 필자의 생각으로 이런 상황이라면 우선 딸아이의 간이 무사할 리가 만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폐와 심장까지도 큰 손상을 당했을 것으로 보는데 혈압이 약간 떨어져 있는 것 외에 심각한 장애가 관찰되지 않고 있는 점에 매우 의아해 하고 있었다. 컴퓨터단층 촬영 등의 조사 결과 복부에 피가 고여 있긴 하지만 그 고이는 속도가 매우 완만하여 급성 출혈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을 담당의사로부터 듣고 그 날 저녁을 민중병원의 중환자실에서 넘긴 후 다음 날인 주일 오후에 급히 서울대병원 소아 중환자실로 이송하였다.

첫 날, 딸아이를 민중병원 중환자실에 둔 채 집으로 돌아와 거의 밤새워 눈물로 기도 드리며 가슴아파했던 기억이 새롭다. 왜 하나님이 이런 어려움을 주시는 것일까? 딸아이는 사실 결혼 후 9년 간의 불임기간을 거쳐 어렵게 시험관내 수정을 통해서 얻은 아이였다. 그 아이를 얻을 때 주위에서 얼마나 많은 주 안에서의 형제 자매들이 기도를 해 주시었던가? 그 아이를 얻은 것은 우리 가족과 그 당시 주위의 많은 분들의 기도의 결과였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이것은 무슨 일인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데는 크게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밤새워 눈물로 기도하는 가운데 아직도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주님의 음성이 쟁쟁하게 귀를 때렸다.

당시 필자는 출석하는 교회를 옮기는 문제로 다소 신앙에 회의를 가지고 방황을 하던 때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독자들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10년 가까이 출석하던 교회를 옮기는 일이란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우선 그 날 기도 가운데 기쁨으로 교회를 옮기는 일을 확정할 수가 있었다. 사람 위주의 신앙이 하나님 위주의 참신앙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돌아보건대 많은 분들이 아직도 목사님이나 가까운 교인들과의 관계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교회를 옮기지 못하고 힘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아내와 함께 옮기려고 마음먹었던 교회에 출석을 하였다. 아침에 미리 준비한 감사헌금을 드리고 마음 깊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분명 하나님은 아직도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마음에 가득 차게 되자 마음이 평안해지기 시작했다. 여러 가지 이유를 생각하여 그 날 오후에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서울대병원으로 딸아이를 옮겼고 많은 선배, 후배, 동료교수들이 성심성의껏 딸아이의 쾌유를 위해서 치료에 전력을 다 해 주었다. 말 할 것도 없이 서울의대 기독동문들의 이어지는 방문과 아울러 중단 없이 이루어진 사슬기도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나게 한 가장 큰 동기였음을 만방에 알리지 않을 수 없다. 그야말로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된 형제요, 자매임을 확인한 값진 계기였다.

서울대병원으로 옮기고 나서 다시 촬영한 컴퓨터단층촬영 결과를 판독한 방사선과 친구 교수 말에 의하면 간의 형체가 그려지지 않을 정도로 망가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출혈이 없었다는 이야기는 거의 기적에 가깝다는 이야기로 나를 위로하였다. 생각해보니 내가 바로 간의 발생에 대해서 우리 1학년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지 않았던가? 질긴 혈관 망 사이로 내배엽기원의 간세포들이 끼어 들어가는 것이 간의 발생 과정임을 생각해 볼 때 결국 혈관 망 주위의 간세포들은 망가졌지만 질긴 혈관들은 크게 망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울혈성 출혈에 그쳤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분명 담관이 파열되어 담즙이 혈액으로 흘러 들어갔을 텐데 Hemobilia가 오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Hemobilia가 올까 봐 전전긍긍하셨던 소와외과의 박귀원 교수님께 제대로 감사하다는 인사 한 번 드리지 못했음을 이제사 깨닫고 송구한 마음을 전한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딸아이의 몸에는 A line, B line 해서 손과 발 한 군데 빠짐없이 혈관주사가 꽂혀 있고 심지어는 목정맥 (jugular vein)에까지 정맥주사선이 연결되어 있고 오른 쪽 겨드랑이 근처 가슴에는 혈흉(hemothorax) 치료를 위해 가슴관(chest tube)까지 꽂혀 있으니 그 모습이란 가련해서 볼 수 없을 지경이었음은 임상선생님들은 너무나 쉽게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겁이 유난스럽게 많아서 주사 한 번 맞는데도 난리를 치는 녀석에게 온 몸에 주사를 꽂아 놓았으니 난리를 칠 법한데 너무나 잘 참고 견디는 것을 볼 때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가슴이 아팠다. 생각해 보니 40여 년을 살면서 그 때 만큼 간절히 기도해 본 적이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성경의 욥을 생각해 보았다. 욥이 당한 고통은 사실 이번에 내가 당한 고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성경 속의 문자만을 보고도 알 수 있지만 남의 고통이라는 간접 경험과 나의 고통이라는 직접 경험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하는 계기였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1996년이 끝나고 1997년 새해가 시작되어 정초에 우리 대학의 신년하례회가 1월 2일의 아침 이른 시간에 교수회의실에서 열렸다. 오는 순서대로 서서 뒤에 오는 사람들과 신년인사를 하고 덕담을 나누는 방식의 하례식이었다. 그 날 100명이 넘는 선배, 동료, 후배 교수들과 인사를 나누는 중에 내가 받은 인사의 대부분은, “이 선생, 열심히 기독학생들을 지도하며 기도하더니 그래서 하나님이 당신 딸을 살려 주신 모양이야!”이었다. 필자는 참으로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전도를 거의 해 본적이 없다. 그럴 만한 지혜도 용기도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필자의 어리석음을 하나님은 아시고 이런 방식으로라도 간접적인 전도를 하게 하시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었던 기억이 새롭다. 결코 기독교인이 아닌 교수들조차도 하나님을 이야기하면서 내게 덕담을 하니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97년 1월 4일, 딸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지 꼭 2주일이 되는 날, 주치의 교수이신 소아외과의 박귀원 교수께서, “이 선생, 오늘 퇴원해도 좋을 것 같애”라는 말씀을 하시는 데 나는 너무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경에 있었던 것이 며칠 전인데 벌써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박 교수님은 이미 심장의 상태, 간의 상태, 폐의 상태 등을 다 점검했는데 이젠 큰 문제가 없으니 퇴원하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병실을 떠나셨다.

앞에서도 이야기 한 것처럼 필자는 간의 발생을 강의하는 해부학교수다. 2주전에 자동차의 앞바퀴에 의해서 짓이겨진 간이 2주만에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재생되는 모습을 필자에게 생생하게 보여 주시며 생명창조의 과정을 어리석은 자에게 재현해 주신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길게 설명했지만 한마디로 4년 6개월 된 어린 아이의 몸 한 가운데로 승용차(로얄 프린스) 앞바퀴가 통과하고도 살아 있다는 것을 그 누가 쉽게 믿으려 하겠는가? 그 사실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하기에 충분한데 짓이겨진 간을 2주만에 다시 만드는 과정을 보여 주시어 학문을 업으로 하고 있는 필자에게 생생하게 깨닫게 해주심으로 자칫 기적이 주는 비논리성 혹은 비합리성의 시비까지 일거에 제거해 주시니 교만하기 쉬운 지식인 집단인 서울의대 교수들에게까지 하나님 살아 계심을 증거한 사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 사고를 통해서 부족하기 짝이 없는 필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은 간이 서늘할 정도로 분명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정교하게 우리의 삶을 지키고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시 12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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