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역경의 열매(11)
 
 

 

나는 크리스천이자 서울의대 교수로 늘 환자를 가까이 하다보니 죄와 질병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어느날 한 분이 내게 질문했다. “우리가 질병을 얻었을 때 기도로 이겨내야 하나요,아니면 병원으로 가야 합니까?”

인간이라면 반드시 질병으로 고생을 하게 되는데 그 대응방법이 천태만상이다. 즉시 병원으로 가서 의사와 상의하는 사람도 있고 가까운 약국으로 달려가기도 하고 민간요법에도 의존하기도 한다.

나 역시 의료인이자 기독교인으로 신앙적 질병관에 매우 관심이 많다. 문제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잘못된 질병관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을 독실하게 믿는 기독교인에게 오는 질병의 의미는 비기독교인들에게 오는 질병의 의미와는 여러 모로 다르다.

비기독교인에게 질병은 단지 고통이요,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라면 기독교인에게는 투병 그 자체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즉 투병과정을 거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기도 하고 질병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함께 기도함으로써 더욱 뜨거운 신앙 세계를 체험하기도 한다.

사복음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에 보여주셨던 신유 은사들을 보면 적지 않은 경우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노라”고 말씀하셨다.

결국 우리 마음속에 진정으로 주님을 의지하고 그로 인해 병이 나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느냐 하는 것을 확인하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뒤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고 병을 치유 받은 여인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신유 은사를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이며 또한 그분께서는 그것을 우리가 절대적으로 믿고 의지하기를 바라시는 것이지 결코 질병을 해결하는 예수님의 능력과 치료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즉 기도하기만 하면 모든 병이 낫는 것이 하나님의 변할 수 없는 뜻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도 바울이 육체의 질병을 위해 세 번이나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 질병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그러한 고통이 우리에게 있을 때 즉 우리가 약할 때만이 우리가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도할 수 있으니 우리의 약함이 곧 강함이라는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질병의 의미는 일차적으로는 모든 인간에게 그러하듯 고통일 수밖에 없지만 신앙적으로는 이 질병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시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깨우치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다.

야고보서 5장 14절에 야고보 사도는 분명히 “병든 자는 교회의 장로를 청하라”고 말한다. 이는 분명 혼자 고민하지 말고 신앙 선배들에게 기도를 의뢰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에게만 주어진 복이 아니고 무엇일까? 나의 병을 위해서 기도를 의뢰할 수 있는 신앙의 선배가 있음은 진정 하나님의 복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에 “장로들은 그 환자에게 주의 이름으로 기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2000년전 사회에서 환자에게 기름 바른다는 사실은 인간의 손을 통한 치료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현실로 돌아와 볼 때 발달된 의술을 최대한 이용하라는 이야기다.

나는 질문한 분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바른 신앙인이라면 질병을 만났을 때 기도가 삶의 중심이 되어 있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발달된 현대 의술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정리=국민일보 김무정 기자 moojeong@kmib.co.kr

 

 

 

Copyright © 2003 DR.Vitamin-C LEE WANG JA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