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일보-역경의 열매(11)
 
 

 

딸을 중환자실에 놔두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하나님 앞에 밤새워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간절한 기도 가운데 주님은 우리 가족을 사랑하신다는 음성이 쟁쟁하게 마음속을 울렸다.

다음날인 주일 오후에 딸을 서울대병원 소아 중환자실로 옮겼다. 당시 나는 출석하는 교회를 옮기는 문제로 다소 신앙에 회의를 가지고 방황하던 때였다. 사실 10년 가까이 출석하던 교회를 옮기는 게 그렇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우선 그날 기도 가운데 기쁨으로 교회를 옮기는 일을 확정할 수 있었다. 사람 위주의 신앙이 하나님 위주의 참신앙으로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돌아보건대 많은 분이 아직도 목사님이나 가까운 교우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교회를 옮기지 못하고 힘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하나님과 바른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큰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 아내와 함께 옮기려고 마음 먹은 교회에 출석했다. 아침에 미리 준비한 감사헌금을 드리고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감사기도를 드릴 수 있었다.

어젯밤 기도에서 확인하였듯 분명 하나님은 아직도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마음에 가득 차자 마음이 편안해졌다.

딸은 서울대병원에서 선·후배 동료교수들의 보살핌과 치료를 받았다. 또 서울의대 기독동문들의 방문과 기도가 끊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 된 형제 자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대병원으로 옮기고 나서 다시 촬영한 컴퓨터 단층촬영을 판독한 방사선과 친구 교수는 “간장의 형체가 그려지지 않을 정도로 망가져 있음에도 큰 출혈이 없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며 나를 위로했다. 생각해보니 얼마전에 내가 바로 간의 발생 과정에 대해 1학년 학생들에게 강의하지 않았던가?

질긴 혈관망 사이로 내배엽기원의 간세포들이 끼여들어가는 것이 간의 발생 과정임을 생각해볼 때 결국 혈관망 주위의 간세포들은 망가졌지만 질긴 혈관들은 크게 망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울혈성 출혈에 그쳤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분명 담관이 파열되어 담즙이 혈액으로 흘러 들어갔을 텐데 이상이 크게 나타나지 않았던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딸아이의 몸에는 A라인 B라인 등 손발에는 빠짐없이 혈관주사가 꽂혔고 목정맥에까지 주사선이 연결됐으며 오른쪽 겨드랑이 근처 가슴에는 혈흉 치료를 위해 가슴관까지 꽂혀 있어서 차마 바라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겁이 유난히 많아서 주사 한 번 맞는데도 난리를 치는 딸아이의 온몸에 주사를 꽂아 놓았으니 난리를 칠 법한데 너무나 잘 참고 견디어내는 것을 볼 때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더 가슴이 아팠다. 생각해보니 40여년을 살면서 그때만큼 간절히 기도해본 적이 었었다고 생각하면서 성경의 욥을 떠올렸다.

욥이 당한 고통은 사실 내가 당한 고통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지만 남의 고통이라는 간접 경험과 자신의 고통이라는 직접 경험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한 기회였다.

정리=국민일보 김무정 기자 mooje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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