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도 언급되어진 바와 같이 여러 측면에서의 의술 발달은 인간의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요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고 장차 부응해야만 하는 근거는 여러 곳에서 지적될 수 있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사회에서 통념적으로 거의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여져 오던 심폐기능설에 의한 소위 심장사와 폐장사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를 테면 최근에 눈에 띄는 의술의 발달 중에서 심장수술의 발달은 예전 같으면 거의 죽을 수밖에 없던 많은 선천성 혹은 후천성 심장질환 환자들을 살려내고 있습니다. 이 중에서도 심장수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개심술의 경우를 볼 때 그 수술의 성격상 수시간 동안 심장을 멈추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때 자발적 호흡까지도 멈추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폐기능의 영구정지를 죽음이라 한다’는 소위 심폐기능설에 입각해 볼 때 개심술의 경우는 심폐기능이 멈추되 일시적인 멈춤이라는 점에서 개체사의 정의에서 벗어난다고 생각하기 쉬우나 임상적으로는 30분 이상의 심폐기능의 멈춤이 있을 때 죽음으로 판단한다고 볼 때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말의 괄목할 만한 의술의 발달 중 가장 두드러진 발달을 보이고 있는 이식의학의 경우를 볼 때 장기사의 개념을 전격적으로 뒤집어놓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던 말기 간장질병 환자들의 간이식에 의한 소생은 근자에 바로 우리 주위에서도 그 빈도가 증가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정도로 늘고 있으며 심지어는 장기사의 대표적 기관인 심장이식도 머지 않아 높은 성공률을 보이게 될 것으로 믿어져 죽음의 정의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 될 것입니다. 세월의 흐름에 따른 의술의 발달은 어차피 편의적으로 정의된 죽음의 정의에 수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라 여겨집니다. 최근에 인정 여부를 놓고 설왕설래하는 뇌사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식물인간과 같은 개념으로 잘못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그 개념이 일반인에게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아 뇌사에 대한 국민적 여론의 형성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일 뿐만 아니라 실제 많은 국민들이 뇌사에 대해서 잘 모르고 반대의 한 편에 서 있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뇌사란 정의상 뇌의 모든 기능이 영원이 멈추는 것을 말합니다. 그 중에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호흡을 관장하는 뇌간의 기능 소실 여부입니다. 심장박동을 조절하는 중추도 있으나 심장은 심장 자체 내에 스스로 박동할 수 있는 자치기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호흡의 경우와는 달리 심장박동 중추가 손상 당해도 심장 자체의 자율성으로 그 박동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심장 자체는 멈추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다시 말해서 뇌사의 개념 속에 포함되는 호흡 중추의 기능 상실로 호흡이 멈추어질 때 죽음에 이르게 되는데 이때에 일어나는 뇌라는 장기의 죽음을 통해서 과거에는 많은 개체사가 유발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발달된 의술은 잘 고안된 인공호흡기를 통해서 이러한 환자들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연명할 수 있게 변경시켜 놓았습니다. 이로 인해서 현실적으로는 소생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환자에게-언젠가 소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한가닥 희망을 가지고-언제까지 이 인공호흡기를 부착하고 있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로 의사와 환자 보호자 모두에게 풀기 어려운 숙제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즉 의술의 발달은 과거에는 별 문제가 없었던 심장사에 의한 죽음의 정의에 새로운 문제점을 제기함으로 그 기준에 변경을 요구하는 새로운 국면에 돌입하게 된 것입니다. 돌아보면 심폐기능 정지에 의한 개체사의 정의로 지금까지는 별 문제없이 지내왔습니다. 사실 앞으로도 심폐기능설에 입각한 소위 심장사에 의한 죽음의 정의가 사회적으로 어떤 문제를 일으킬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다만 사회의 발달, 특히 의술의 발달에 따른 사회 구성원들의 새로운 요구를 심장사의 개념만으로는 도저히 충족시켜 줄 수 없다는 것이 죽음의 정의와 관련된 가장 큰 현실적 문제인 것입니다.

죽음의 정의에 대한 정의를 요약해 볼 때 결국 어떠한 죽음이든 마지막에는 심장의 멈춤으로 끝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표적 장기로서의 심장사가 사회적으로 볼 때 보편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져 왔고 앞으로도 별 문제없이 받아들여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심장이라는 장기의 죽음에 가장 근접해 있는 다른 장기들을 생각해 보면 폐와 뇌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직접 기도가 막힘으로 오는 질식에 의한 사망인 폐사는 즉시 심장사로 이어지고 결국 개체사에 이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시간의 차이가 다소 있긴 하지만 뇌사, 혹은 뇌간사의 경우에도 아무런 의학적 조치가 없을 때 호흡의 정지로 마찬가지의 경로를 가게 됩니다. 결국 죽음에 대한 완벽한 정의는 심장 박동의 정지, 호흡의 정지와 뇌기능의 영원한 소실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 정의에 대해서 이론의 여지를 가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다만 문제가 되는 것은 문제의 세 장기가 장기사를 일으킬 때 어느 장기의 죽음에서 개체사를 선언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심장의 직접적인 멈춤으로 오는 소위 심장마비의 경우 현행의 정의로 죽음을 선언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기도 폐쇄에 의한 질식사 혹은 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생각됩니다. 즉시 심장의 멈춤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뇌사후의 경우는 조금 복잡합니다. 뇌사후에는 즉시 심장사가 뒤따르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대의학이 개발해 낸 각종 연명기기로 뇌사후 상당 기간 동안 심장의 박동이 멈추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장이 멈추지 않았음에도 개체사의 선언을 하는 것은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매우 충격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의 몇 가지 이유들을 가지고 죽음에 대한 획기적 의식의 전환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첫째, 심장사가 절대적 개념의 정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앞서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합당한 선에서 국민적 혹은 역사적 공감대를 이루어 형성되어진 지극히 편의주의적인 정의인 것입니다.

둘째, 죽음이 한 개인의 생과 사를 나누는 지극히 중요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그 개념은 사회의 발전에 따라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들의 생각이란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발전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 새로운 죽음의 정의에 대한 사회의 요청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죽음이라는 명제는 인간 생존이라는 매우 바탕이 되는 문제에 관련되어 있기는 하나 새로운 죽음의 정의에 의한 긍정적이고 좋은 결과들을 예측해 볼 때 결코 인간존엄이라는 궁극적 명제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고 하는 점입니다.
넷째, 심장만 뛰고 있는 뇌사상태의 환자의 경우 심장이 뛰기 때문에 고가의 의료 장비를 이용해 뻔히 예측되는 결과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호흡을 시키는 것은 환자 보호자에게는 지극히 비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환자에게는 비인간적이라는 측면도 고려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섯째로는 뇌는 한 인간의 정체성(identity)을 결정해 주는 가장 중요한 장기라는 사실입니다. 정체성의 변화는 한 인간의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결론적으로 뇌사를 개체사로 인정하자는 것이 필자의 견해입니다. 결론을 이야기 하면서 우려하는 것은 일반 국민들이 뇌사에 대해서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차제에 뇌사에 대한 국민적 계몽 차원에서 뇌사에 대한 많은 글들이 나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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