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그 정의를 규정하기에 앞서 본능적으로 생각하기조차 회피되어지는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한 연유에서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죽음은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아니한 불가사의한 상태로 두려움 속에 남아 있는 인간의 간접 경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인간의 기원이 수천 년 그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볼 때 성경 속의 인물들이 수백 년의 수(壽)를 누렸다 치더라도 죽음이라는 사건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반복을 거듭해 왔습니다. 수없이 반복된 경험임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직접 경험한 살아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또한 죽음 그 자체가 주는 두려움 때문에 더욱더 불가사의 속에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죽음의 길은 일단 들어서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이요 한편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일이기 때문에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철학 혹은 신학과 같이 형이상학적인 학문 속에서 신비하게 다루어져 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불가사의함, 두려움과 신비함 속에서도 오랜 옛날부터 관행에 의해서든 어떠한 정해진 기준에 의해서이든지 간에 수없이 많은 죽음들이 선언되어 시신이 땅에 묻히거나 화장되어 왔습니다. 의술의 발달을 통해서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살아나고 전체적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고 있다고 볼 때 질병을 다룸으로써 늘 죽음과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는 의사들은, 의학적 측면에서 죽음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히는 것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한 딜레마 속에서도 죽음은 선포되어 왔고 그러는 중에 죽음에 대한 의학적 정의가 불문적으로 정립되었을 것이고 그것이 지금도 관행처럼 적용되어오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지금껏 별탈없이 받아들여져 온 죽음의 정의의 문제가 최근 들어 새삼스럽게 제기되고 있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요? 여러 가지 사회적 변화들이 이유가 되겠으나 그 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의술의 발달에 의해 생명이 연장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도입되기 시작한 항생제에 의한 감염병 치료의 혁신적 발전, 세계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이식의학의 발달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 생명을 연장해 줄 수 있는 각종 의료장비의 개발 등으로 인간의 죽음에 대한 개념은 직접 간접으로 철저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차제에 이제껏 사회관행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죽음의 개념에 대해서 살펴보고 급속하게 변화되어가는 사회에 발맞추어 어떻게 새로이 그 개념을 정립할 것인지를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차원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죽음이란 과연 무엇인가? 죽음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가장 단순하게는 ‘생명의 끝’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조금 더 구체화해서 의학사전을 찾아보면 죽음이란 ‘살아 있는 모든 몸의 기능이 영원히 멈추는 것’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예시된 두 종류의 죽음의 정의를 서로 연결시켜 생각해 보면 죽음의 정의에 대한 조금 진전된 이해가 있으리라 믿습니다. 즉 생명이라는 것은 몸의 어느 부위이든지 기능이 있느냐 없느냐에 의해서 결정지어진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 기능의 멈춤이 일시적이냐 영원하냐, 즉 전문 용어로 그 멈춤이 가역적인 변화냐 혹은 불가역적 변화냐 하는 것이 죽음의 정의에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와 같이 죽음의 개념이 간단히 정의되었지만 실제로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여러 측면에서 기술되어 많은 종류의 죽음이 알려져 왔습니다. 즉 ‘생물학적 죽음(biological death)’, ‘뇌사(brain death)’, ‘심장사(cardiac death)’, ‘대뇌사(cerebral death)’, ‘임상적 죽음(clinical death)’, ‘대뇌피질사(cortical death)’, ‘세포사(cytological death)’, ‘법적 죽음(legal death)’, ‘정신사회적 죽음(psycho-social death)’, ‘영혼사(spiritual death)’ 등 깊이 있는 연구의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기술되어 왔습니다. 즉 죽음과 삶의 경계를 결정함에 있어서 삶의 질과 관행 그리고 생명에 관련된 장기를 여러 가지로 고려함에 따라 죽음에 대한 기술이 여러 측면에서 이루어져 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언급된 수사적 죽음의 정의가 갖는 복잡성을 떠나서 죽음이란 현실적으로 심장의 영원한 멈춤으로 야기되는 단순 명료한 사건입니다. 즉 심장의 멈춤은 그밖의 모든 장기의 멈춤을 가져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론매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죽은 원인이 어디에 있든지 무조건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이야기하는 우를 범합니다. 어떠한 죽음도 궁극적으로는 심장의 멈춤으로 끝나기 때문에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이야기는 실제로 왜 죽었는지를 모른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가장 확실한 죽음의 정의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모든 세포가 의학사전에서 정의된 바와 같이 그 기능을 영원히 소실하는 소위 세포사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에 대한 정의를 바로 앞에서 정의된 ‘세포사(cytological death)’에 의해서 규정하지 않는 것은 실제적으로 모든 세포의 영원한 기능 소실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사회적 관행이나 죽음의 역사를 돌아볼 때 심장사가 아무런 저항없이 죽음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이는 결국 죽음이라는 엄숙한 사건에 대해서 어느 선에서 사회 구성원 모두의 묵시적 동의를 얻은 것이-비록 세포사의 조건을 완전히 충족시키고 있지는 못하지만-바로 심장이 멈춘 뒤에 나타나는 죽음의 현상들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엄밀히 심장사를 살펴볼 때 심장이라는 한 장기의 죽음을 한 개체의 죽음으로 인정하는 데에는 편의주의적인 면이 없지 아니하다는 점입니다. 심장이나 폐, 혹은 뇌와 같이 생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장기의 죽음을 통해서 개체의 죽음이 인정될 때 이를 장기사(organ death)라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세포사든 장기사든 간에 그것을 통해서 한 개체가 죽는 것을 개체사(somatic death)라고 합니다. 결국 우리가 흔히 죽음의 정의를 관행적으로 이야기할 때 개체사의 개념임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의상 개체사는 죽음의 선언이 이루어지는 어느 한 시각에 일어나는 순간적인 사건인 데 반해 장기사나 세포사로 내려갈수록 죽음은 한 순간의 사건이 아닌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일어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장기사나 세포사의 개념으로 죽음을 정의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의사들이 사망진단서에 사인(死因)을 기록할 때 그 원인이 어찌 되었든지 간에 일차 사인으로 심폐기능정지라고 기록합니다. 그 다음에 선행 사인으로서 실제 죽음의 원인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결국 어떠한 질환에 의해서 죽는다고 할 때 종국에는 심장기능의 정지에 의한 개체사의 개념이 일반적으로 의학계에서뿐만 아니라 통념적으로 가장 저항감없이 받아들여지는 죽음의 정의가 된다는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심장이라는 특정 장기의 죽음을 개체사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면 심장기능정지에 의한 소위 심장사의 의학적 기준은 무엇인가? 임상적으로 많은 의사들에 의해서 적용되어 온 보편적이고 실제적인 기준을 살펴보면 호흡과 심장박동의 정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고 그밖에 부수적인 죽음의 확인과정으로 동공반사의 소실, 항문 괄약근 이완, 의식의 소실 등과 같은 뇌기능의 정지시에 나타나는 현상들과 사후 경직현상, 혈액침체(hypostasis) 등과 같은 물리화학적 변화 등을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심장사의 기준만으로 실제적인 죽음을 선언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하는 것이 죽음의 정의에 대한 역사의 증언입니다. 즉 위에 열거된 기준에 의해 죽음이 선포되어 일상적 사후 처리, 즉 매장이 되었으나 후에 시신이 관 속에서 움직인 여러 증거가 보고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주 드문 경우에 있어서 위에 열거된 다섯 가지의 기준을 만족시키는 가역적인 깊은 혼수상태(reversible deep coma)가 가능하기 때문에 죽음의 실제적 선언에는 어려움이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대부분의 경우 위에 열거된 기준에 의해 죽음이 선언되고 사후처리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벼운 사망 처리에 대한 경고로 이미 19세기 말에 Montgomery는 사후처리로 매장된 모든 경우의 약 2%가 산 채로 매장되었다는 충격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이미 1세기 전에 비가역적 심장기능의 정지를 확인하지 아니한 조기매장(premature burial)의 비율을 보고함으로써 인명경시의 풍토를 개탄한 Montgomery의 경고는 죽음의 정의를 새삼 정리하는 오늘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20세기초 프랑스에서는 앞서 열거된 다섯 가지의 죽음에 대한 의학적 기준에 의해 사망이 선고된 후 측두골동맥이나 요골동맥을 절단하여 출혈이 일어나지 않을 때 즉 심장기능이 정지되었음이 확인되었을 때 비로소 완전한 죽음을 선포할 수 있음을 법률로 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 보다도 확실한 죽음의 증거는 조직의 부패현상입니다. 부패는 미생물의 침투를 저지하는 살아 있는 조직의 마지막 몸부림의 멈춤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개체를 이루는 모든 세포가 그 생명의 기능을 잃는 소위 세포사의 가시적 징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조직의 부패 확인을 통한 죽음의 정의는 실제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 왜냐하면 부패는 죽음을 확인하는 확실한 방법이 될 수는 있어도 한 순간에 일어나는 죽음을 정의할 수 있는 현상은 되지 못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통적 한국의 장례 형태인 소위 삼일장, 오일장 등은 죽음의 확인을 위한 원시적 방법의 동원이라는 일부의 의미를 지울 수 없지만 산 채로 매장될 2%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는 지극히 인간 존엄적 장례방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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